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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매니저 0 3,584 2021.06.28 19:15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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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 of Vietnam.svgEmblem of Vietnam.svg


국기


국장




Vietnam on the globe (Asia centered).svg

11975년 4월 30일까지는 남베트남북베트남으로 갈라져 있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베트남어: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꽁호아싸호이쭈응이어비엣남, 문화어: 윁남사회주의공화국)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약칭은 베트남(베트남어: Việt Nam비엣남, 문화어: 윁남)이다. 주요 도시로는 하노이, 호찌민시, 다낭, 하이퐁, 호이안, 사파, 후에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서쪽으로는 라오스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동해(남중국해)에 면해 있다. 면적은 약 33만 341km²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최근 인구 통계에서는 9,649만 명으로 조사되어,[2] 세계에서 1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나라의 명칭인 비엣남(Việt Nam)은 194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남월(베트남어: Nam Việt남비엣)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수도하노이이며, 최대 도시는 호찌민시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혼합경제체제를 가진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다.

고대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938년 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응오꾸옌(베트남어: Ngô Quyền)이 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3] 독립 이후 베트남의 왕조들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국경을 넓혀갔으며, 이러한 영토 확장은 청나라와의 청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식민 지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하노이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4]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게 되었다.[5]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6]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쿠데타로 붕괴하고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져 남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국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7]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8]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9] 1992년 베트남 공산당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10] 200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

명칭[편집]

베트남의 국명 비엣남(Việt Nam 越南, 월남)은 베트남 북부에서 중국 남부에 이르렀던 기원전 2세기의 고대 국가 남비엣에서 유래하였다.[11] 비엣(Việt, 越)은 백월(Bách Việt, 百越)족을 뜻하는 말이다.[12] 비엣남이란 낱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베트남의 시인 응우옌빈끼엠의 시 삼짱찐(Sấm Trạng Trình, 讖狀程, 섬상정)이다. 이후 비엣남은 점차 베트남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어, 1905년 베트남의 판보이쩌우(Phan Bội Châu, 潘佩珠)와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가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월남의 식민지화에 대해 나눈 대담은 《월남망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13] 비엣남은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 민주 공화국 이후 공식적인 국명이 되었다. 한국어권에서는 윁남과 베트남이라는 표기가 쓰이고 있는데, 한국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표준어에서는 1965년까지 비에트남과 베트남으로 불렸으나, 이 중 베트남이라는 표현이 관습상 용례로 인정되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14] 이에 반해 문화어에서는 이곳의 언어에 대해 윁남어란 표현을 사용한다.[15]

역사[편집]

동손 문화의 송다 청동북
베트남의 영토 확장
중세 이후 베트남은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를 대상으로 정복 전쟁을 벌여 계속하여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900년
1100년
1475년
1650년
1760년

선사 시대[편집]

베트남에는 구석기 시대 이래 인류가 살아왔으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인도네시아 제도에 이르는 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석기 문화 유적이 많이 발굴되고 있다.[16] 베트남의 건국신화인 락롱꿘, 어우꺼 신화는 약 4,500년 전 락롱꾸언(베트남어: Lạc Long Quân貉龍君 ❲용(龍)의 우두머리❳)과 어우꺼(베트남어: Âu Cơ)가 결혼하여 많은 베트남 부족들의 선조가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17]

고대[편집]

베트남에 세워진 최초의 문명은 동선 문화이다. 동선 문화기원전 300년청동기 문명으로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였으며 베트남 북부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 여러 곳을 지배하였다.[18]마강홍강 유역에서 기원전 1200년 경의 습식 벼농사와 정교하게 만든 북과 같은 청동 주물들이 발견되었다. 동선 문화의 청동 무기, 도구, 북과 같은 유물들을 만든 청동 주물 기술은 동남아시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다.[19][20] 동선 문화는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를 이루었고, 홍방 왕조는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문랑, 베트남어: Văn Lang, 文郎)을 세웠다.[21]

기원전 257년 홍방 왕조가 무너지고 툭판 왕조가 세워졌으며, 툭판 왕조는 다시 기원전 208년 남비엣에게 멸망당하였다. 기원전 111년 중국의 한나라무제남비엣을 정복하였다. 기원전 111년부터 1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시기 동안 베트남은 중국 왕조들에 의해 지배되었다.[22]쯩 자매바찌에우와 같은 산발적인 독립운동은 짧은 기간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무력에 곧 진압되었다.

중세[편집]

938년 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응오꾸옌(吳權)이 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23] 그러나 응오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였고, 딘 왕조가 그 뒤를 이었다.

이후, 베트남에서는 전 레 왕조, 리 왕조, 쩐 왕조, 호 왕조와 같은 왕조들이 그 뒤를 이었다. 호 왕조는 1406년부터 1407년까지 이어진 명나라의 침공을 막지 못하였고, 베트남은 역사상 네 번째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24]

근대[편집]

1418년 농민들을 규합하여 독립 전쟁을 벌인 레러이는 명나라를 축출하고 1428년 대월국의 황제가 되었다. 이렇게 세워진 후 레 왕조는 잠시 막 왕조에게 멸망하기도 하였으나 부흥 운동에 성공하여 1778년까지 베트남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부흥 운동 이후의 후 레 왕조는 사실상 독립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두 가문인 찐 주응우옌 주의 남북조로 분리되어 있었다. 1777년 격화되는 농민 항쟁을 막지 못한 후 레 왕조는 결국 멸망하고 떠이선 왕조가 세워졌다.[25]

후 레 왕조가 멸망한 후 남부 실권자였던 응우옌 주는 떠이선 왕조를 격파하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 민망제로마 가톨릭 선교사 박해사건을 일으키자, 영국과 경쟁하여 일찍부터 인도차이나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었던 프랑스나폴레옹 3세로마 가톨릭 탄압을 구실로 삼아,[26]1858년 다낭을 공격하고 이듬해에는 사이공을 점령하였다. 그 후 프랑스는 베트남의 북부 및 중부를 공략하여 1884년에는 베트남의 전국토가 프랑스의 식민지로 되었다. 청나라와의 청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트남을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통치하였다.[27]

현대[편집]

프랑스군의 정찰, 1952년


베트남 전쟁[편집]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시체에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를 넣어서 문제가 된 영상이다.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분단되었고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은 미국에 맞서서 베트남 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미국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5년 베트남의 전 지역을 점령하므로써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7]

전후 시대[편집]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계획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8]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28] 1992년 베트남 공산당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29]

정치[편집]

베트남 국립 컨벤션 센터

옛 월맹은 1969년 호찌민이 세상을 떠난 뒤 쯔엉찐 국민의회 상임위 주석, 레주언 베트남 공산당 제1서기, 팜반동 총리 등 3인을 중심으로 집단지도 체제를 채택했다. 구 월맹은 월남이 공산주의 국가가 된 후 월남 임시혁명정부와 함께 1여 년간의 남북통일 준비작업을 끝내고 1976년 4월 25일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최고 권력기구인 492석의 남북단일 국민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로 인구 10만 명당 1석을 기준으로 하는 배분원칙에 따라 북베트남에서 249석, 남베트남에서 243석을 선출했다. 남북 베트남의 18세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가한 총선은 남북 베트남의 공산주의 정권이 전국의 노동자·농민·여성·산악부족 및 그 밖의 소수인종에서 선정한 후보자 중에서 국민의회 대표들을 선출했으며 야당후보는 없었다.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남북 베트남 단일 국민의회는 1976년 7월 역사적인 통일 베트남 수립을 선포하고 국호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하였다. 수도는 하노이로 정하는 한편 초대 주석으로 구 월맹의 마지막 주석 똔득탕을, 그리고 2명의 부주석으로는 응우옌르엉방응우옌흐우토를 선출하였다. 또한 옛 월남 수도 사이공호찌민시로 개칭하고 국기는 종래의 월맹기였던 〈금성홍기〉(金星紅旗)를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국민의회는 통일 베트남의 새 헌법을 마련할 36명의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는 동시 새 헌법이 공포될 때까지 1959년도 월맹 헌법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입법기관으로 국민의회가 있고 각 성(省)에 각급 인민회의가 있다. 단원제이며 임기는 5년, 매년 2회 소집된다. 주석, 부주석과 간부의원 15명으로 구성되는 상임위원회가 실질적인 입법기능을 행사한다.

1991년 6월 제7차 당대회에서 도이모이 건의에 중심 역할을 해온 도므어이가 총서기로 선출됐으며, 동 8월의 내각개편에서 개혁파인 보반끼엣 총리로 선출됐다. 1996년 6월의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도 ‘도이모이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재확인했다. 2001년 4월 농득마잉 서기장이 취임했다.[34]

행정 구역[편집]

베트남의 행정구역 구분

베트남의 행정 구역은 63개 성(베트남어: tỉn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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